어쩌면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람은 적당히 불었고, 발밑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어디를 보아도 위협하는 것은 없었다. 긴 시간을 걸어온 사람에게 이 정도의 평온함이라면 충분한 보상이 아닐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편안할수록 마음 한편이 불편해졌다.
이제 그만 걸어도 된다는 마음과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마음이 서로를 밀어냈다.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자꾸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나아가야 할 이유는 희미해졌는데, 머물러야 할 이유 역시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두려웠던 것은 험난한 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저녁을 먹고, 내일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잠들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다시 특별하지 않은 내일로 이어지는 삶. 그런 일상적인 푸근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을 바라볼수록 묘한 불안이 따라왔다.
정말 이렇게 머물러도 되는 걸까.
오래도록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했고, 가진 것으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고 믿었다. 평온함을 원하면서도 그 속에 오래 머무는 것은 두려웠다. 안락함은 때때로 멈춤처럼 느껴졌고, 멈춤은 곧 뒤처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다시 걸었다.
꽃밭을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저 어두운 하늘 아래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지금보다 깊은 외로움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발을 옮긴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희망에 차 있는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뒤에 남겨두는 일이었다.
수많은 꽃 사이를 혼자 걷는다.
꽃은 붙잡지 않고, 세상 역시 떠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결국 앞으로 밀어내는 것은 스스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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